<해님달님 이야기 17. 타인의 존재>

3줄 요약

  1. “아우, 놀라라. 엄마,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중략… 를 지르면서 내리면 어떡해?” “그러게.” “나 엄청 놀랐잖아.”
  2. “엄마, 근데 좀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지?” “좀 모자란 사람인 것 …중략… “저런 사람은 집에 가두고 못 나오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국가에서?”
  3.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하는 말이었다. 저 말은 해외 …중략… 다시 떠올렸다. 오늘은 어디에서 타인의 눈초리를 받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그 날의 풍경은 여느 토요일과 다름없는 전철 안이었다. 토요일 한낮의 전철 안은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로 북적였고, 게 중 빠질 수 없는 무리가 결혼식에 가는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J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문 바로 옆에 서서 기둥을 붙잡은 채 창문 너머의 터널 속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지하철 소음들 사이를 뚫고 갑자기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약수! 약수에서 내려! 내리는 거야!”


큰 목소리에 J는 깜짝 놀라 창문에서 눈을 떼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체격의 한 남자가 지하철 노선도를 올려다보며 혼잣말이라기엔 큰 소리로 같은 단어를 반복하고 있었다.


‘약수에서 내려야 하는 지적 장애인이군.’


상황을 파악한 J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하철 노선도 앞에 소금 기둥이 되어 서 있는 남자를 따라 J 역시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니 그 남자는 두 정거장 후에 내려야 했다. 혹시 내리지 못하면 내리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J도 덩달아 몸을 긴장한 채 기다렸다. 지하철 문이 한 번 열렸다가 닫혔고, 이제 다음에 내려야 하는 남자의 긴장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J는 느낄 수 있었다. J의 오빠인 H 역시 전철을 탈 때면 바짝 긴장하곤 했다. J는 남자의 목에 걸린 핸드폰을 바라보며, 남자의 보호자가 혹시 근처에서 몰래 남자를 뒤따르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예전의 J 엄마처럼. 짧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여 서서히 멈추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우워어어엇!!”


남자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극도의 긴장감과 해방감이 느껴져서 J는 피식 웃었다.


‘그래, 장하다. 제 역에 내린 걸 축하한다.’

“꺄아앗!”


남자의 포효 소리와 맞물려 여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문 바로 앞에 서서 전철에 타려던 모녀 중 딸이 낸 소리였다.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한 남자가 포효하며 내렸으니 놀랐던 것이다.


‘그러게 먼저 내린 다음에 타야지, 왜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대.’


그래도 놀라긴 놀랐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J는 금방 관심을 껐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들어온 모녀는 J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고, 다시 다음 역을 향해 달리는 시작한 전철 안에서 모녀의 대화 소리가 J 귀에 들려왔다.


“아우, 놀라라. 엄마,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내리면 어떡해?”

“그러게.”

“나 엄청 놀랐잖아.”


딸은 엄마에게 괜찮냐고 거듭 물으며 비명을 지른 자신이 무안했던 탓인지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자신이 놀랐음을 강조했다.


“엄마, 근데 좀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지?”

“좀 모자란 사람인 것 같더라.”

“보호자 없이 혼자 다녀도 되나?”

“그러게. 저 아들 엄마는 뭐하고.”

“정신이 모자라도 남잔데, 위험하잖아. 저러다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러게 말이다.”

“저런 사람은 집에 가두고 못 나오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국가에서?”


딸의 마지막 말에 점점 박동 수가 올라가던 J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눈을 들어 창문에 비치는 모녀를 가까스로 바라보았다. 결혼식에라도 가는 듯 곱게 차려입은 옷차림이었다. J에게 한 이야기도 아닌데 목구멍이 콱 막혀오는 것을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아무리 저 남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 해도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냐고, 저 남자가 무슨 짐승이냐고, 저 사람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 아니냐고, J의 속이 시끄러워졌지만, 목구멍 뒤로 넘기고, 또 넘겼다. 하지만 ‘누군가는 H를 저렇게 여기겠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결국 J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할 때까지 J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울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날의 모녀 대화는 J의 가슴에 박힌 채 잊을 수 없었다. 그 모녀야 그저 재수가 조금 없었던 어떤 토요일 오후의 해프닝은 금세 잊었겠지만. 살면서 J가 느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동정 아니면 경멸의 시선이었다. 장애인은 불쌍해야 하거나 더러운 존재였고, 순수한 존재이거나 두려운 존재가 됐다. 늘 타인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고, 대상화되어 그 사람 자체로 존중받지 못했다. H가 그러했듯이. 비슷한 경우가 또 있었다. 길고양이를 데려와 같이 살게 된 이후, J는 집을 방문한 택배 기사에게 종종 이런 소리를 들었다.


“밥도 못 먹는 불쌍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하는 말이었다. 저 말은 해외 난민 아동에게 후원한다 해도 들을 수 있는 말이었는데, 늘 더 불쌍하고, 더 안 좋은 환경에 놓였다고 생각되는 무언가와 비교를 했다. 결국, 더 약하고 불쌍한 존재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 현실에서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쾌하거나 불편을 겪으면 바로 격리와 추방, 소외, 처벌을 주장하는 모습을 J는 자주 보아왔다. 내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시혜를 베푸는 기준 역시 내가 정한다는 ‘정상’인들의 오만함. 그러나 공교롭게도 J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약자를 존중하고, 관심 갖거나 연대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호의와 은혜를 베풀었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고양이를 돕든 인간을 돕든 말로만 도우며 존재에 순서를 매기는 사이, 한편에서는 함께 할 방법을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J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혜’와 ‘면죄’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야 하거나, 아니면 두렵고 경멸하여 격리해야 하는 식으로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가족이지만 타인이기도 한 H의 존재가 알려준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J는 그 토요일 한낮 전철 안에서 본 남자를 다시 떠올렸다. 오늘은 어디에서 타인의 눈초리를 받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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