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호] 소명’s class 기독교적 역사수업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탐방학습

3줄 요약

  1. 소명’s class 기독교적 역사수업
  2. 사회과 역사 정승민 선생님 [email protected]
  3. 소명학교 홈페이지 : http://vccs.kr


소명’s class 기독교적 역사수업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탐방학습!”

“양화진에서 발견한 하늘의 가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탐방학습을 가는 이유

소명학교 7학년, 10학년 신입생들은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 현장학습을 다녀온다. 왜 가야할까.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배움이 있다. 기독교 학교로서 우리나라 복음의 시작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기독교 선교사들이 근대사에 이바지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양화진에 묻혀있는 선교사들의 왜 이곳에서 죽으며 자신의 생애를 조선에 바쳤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HOW)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명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은 “교회에서 다녀왔다.”, “초등학교때 다녀왔다.”, “가족들과 다녀왔다.”, “왜 또가느냐”며 불평을 많이한다. 성경이 읽을수록 감동이 다르듯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도 갈때마다 감동이 다를 수 있다. 얼마만큼 준비하고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전조사가 충분할 수 록 느껴지는 풍성함이 다를 것이다.

양화진 방문시 체크사항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방문하기 전에 몇 가지 체크사항이 있다. 개별 방문시 언제든지 편하게 관람이 가능하다. 단체방문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전문해설사(가이드)들이 준비되어 있어 사전예약을 통해 친철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사전예약을 하게 되면 가이드가 20명에 1명씩 배정되어 그룹별 설명이 가능하다. 방문인원이 많아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을 맡아서 해준다. 단체방문시 인솔부담을 덜 수 있다. 양화진 묘원을 관리하는 100주년기념교회 성도들이 해설 가이드로 헌신했기 때문에 방문자들 모두 양질의 관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방문 당일에는 양화진 안내 영상시청, 묘원 탐방 그리고 양화진홀 관람까지 1시간~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모든 비용은 무료다. 단체예약은 전화로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예약을 마치면 문자로 예약확인 연락도 해준다. 예약을 진행하며 교육목표를 담은 탕방학습 취지와 함께 간단한 내부결재를 학교에서 받고 학부모에게 보낼 가정통신문을 작성한다. 가정통신문에는 양화진으로 오는 교통편이 들어가면 좋다. 가정통신문 작성을 마치면 행정적 준비는 마친 것이다.


양화진에서 꿈과 열정의 삶을 만나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다수 묻혀있다. 이들의 업적은 교육, 의료, 구제(고아원·양로원)등에서 빛나고 있다. 하지만 서양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열강의 첨병 역할을 해서 결과적으로 침략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보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보는 관점이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고 결과론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원인제공자로 몰아서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선교사들의 삶이 완벽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일부 선교사들이 일제의 침략을 옹호했거나, 호의호식(好衣好食) 했다는 비판도 엄연히 공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판받아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교사의 삶을 들여다보면 선교사들의 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순수한 선교사들이 삶을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용한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고귀한 선교사들의 희생을 제국주의 열강이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을 뿐이다. 일부 선교사의 일탈이 대다수 선교사의 순수한 헌신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아니기 때문이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힌 인물들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보자.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아편설라(亞篇薛羅))는 배재학당을 세웠고 민족교육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 감리교의 초석을 놓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양화진 묘원에는 그의 자녀가 묻혀있다. 왜 대를 이어서 조선에 남았을까. 아펜젤러의 아들은 근대 교육을 위해 노력했고 자신의 삶을 불태우고 양화진에 묻혀있다. 한국선교의 개척자 H.G.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원두우(元杜尤))는 4대에 걸쳐 한국 사랑을 실천한 가문이다. M.F.스크랜턴(Mary Fletcher Benton Scranton)은 오늘날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前身)인 ‘이화학당’을 세웠다. 버려진 아이들과 첩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근대적 여성교육의 첫출발이었다. 한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H.B.헐버트(Homer B. Hulbert, 흘법(訖法)) 선교사는 을사늑약(1905)의 부당성을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알렸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도 참석해 유럽 언론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헐버트 선교사의 비문에는 “나는 웨스터민스터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 원하노라”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E.T.베델(Bethell, E.T.)은 한국을 대변하고 민족운동을 지원한 언론인이다. 그는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선교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일본인 소다가이치(曾田嘉伊智)라는 일본인이 유일하게 양화진에 있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가깝지만 먼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을 적대시하는 우리 정서를 가만하더라도 일본인으로 유일하게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묘비가 세워지기까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20세기초반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일제식민지 시기때부터 고아들을 돌봐서 그들의 아버지로 불렸다. 소다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천명에 달했다. 또한 일제의 탄압으로 감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의 구명을 위해 노력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일본의 스파이’로 몰았고, 당시 조선총독부 관리로부터는 일본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쌍방에서 오해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해방때까지 우리나라를 위해 온전히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의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평화의 사도였다. 1962년 사회장으로 장례가 거행된다. 모두가 그를 존중했다. 큰 묘비들과 대조적으로 작은 묘비들도 인상깊었다. 모두다 부모님이 선교사로 헌신하여 이역만리(異域萬里) 타향에서 하루만에 혹은 며칠을 살다가 숨을거둔 작은 묘비들이 참 많았다. 자녀를 먼저보내는 선교사들의 심정이야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미루어 짐작해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했다. ‘이 아이들이 무슨 이유로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생각했다. 그냥 미안했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복음은 그렇게 흘러온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성경구절의 의미가 다시금 마음속에서 곱씹어본다.

개화기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조선에 전해준 밀알이었다. 제국주의의 첨병(尖兵)이며 제국주의의 지지자라는 평가는 순도 높은 헌신을 추락시키는 평가다. 이땅에 묻혀있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역사교사로서 개화기 선교사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바라보도록 교육한다.

‘기록’하며 성찰한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둘러보고 현장학습을 마무리한다면 2% 부족한 학습이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소감문을 받는 것도 방법이지만 탐방전에 동선을 머릿속에 그리며 보고서를 만들었다. ‘기록’을 통해 성찰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무엇을 이해하고 느꼈고 궁금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보고서 양식을 완료하고 탐방을 가기 한 주전에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안내했다. 답사보고서는 총 3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는 양화진 묘원 탐방 4가지 목표를 다시한번 적어주었다. 학생들에게 답사목표를 읽어보고 보고서를 작성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어서 ‘양화진’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나름대로 이유를 적어보도록 했다. 그리고 ‘양화진 유적지와 관련된 성경구절’을 찾아보고 왜 그 성경구절을 찾았는지 쓰도록 했다. 모범답안보다는 학생들이 좀 더 생각을 이끌어내서 쓰도록 하고 싶었다. 양화진 탐방 시작은 위에 언급했듯이 양화진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보고서에는 탐방순서에 따라 영상의 내용을 100자로 요약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그리고 베델선교사와 헐버트 선교사 묘비의 사진을 찍고 이들의 활동을 조사하는 것을 미션으로 부여했다.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학생들이 관람하면서 인상깊었던 것을 사진을 찍어 이유를 적어보도록 했다. 자유미션이다. 보고서 두 번째 페이지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연결해서 ‘답사후기 소감문’을 적어보게 했다. 소감문은 자유롭게 쓰도록 했다. 글쓰는 것이 어려운 학생들은 ‘양화진에 대한 자시만의 정의내리기’, ‘양화진 관련 성경구절찾기’, ‘양화진 다큐멘터리 영상보고 100자 요약하기’, ‘탐방미션 수행하기’ 등의 분절된 활동을 연결해서 적어보도록 안내했다. 이런 활동들은 글쓰는 것이 힘든 학생들은 막연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보고서 세 번째 장에서는 답사를 하면서 발견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도록 했다. 학생들의 궁금한 질문과 답을 찾아보도록 유도한 이유는 스스로 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보고서 마지막장 하단에는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부여하도록했다. 점수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수 있겠지만 소명학교에서는 시험도 무감독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한 자세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하도록 했다. 또한 소명학교는 줄세우기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점수가 많이 나와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평가로 양화진 답사 보고서의 점수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모두 읽어보고 제출기한 준수, 내용의 충실성, 창의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상장을 수여한다. 이렇게 탐방의 기획부터 수행평가 연계화 상장수여까지 연결되면 학생들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탐방 학습을 마무리 하게 된다.


사진으로 만나는 양화진탐방 스케치

<양화진에 대한 15분 분량의 동여상을 함께 관람>

<영상 관람후에 탐방 안내와 주의사항을 전달>

<7학년 학생들이 해설 가이드의 묘원 설명을 듣고 있다.>

<10학년 학생들이 선교사 묘비앞에서 해설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7학년 경청반 학생들의 탐방기념 단체사진>

<7학년 순종반 학생들의 탐방기념 단체사진>

<10학년 경청반 학생들의 탐방기념 단체사진>

<10학년 순종반 학생들의 탐방기념 단체사진>

양화진 보고서에 대한 피드백

<양화진 우수후기 상장 양식이다.>

<10학년 학생들이 제출한 양화진 탐방보고서>

<7학년 학생들이 제출한 양화진 탐방보고서>

양화진에서 발견한 하늘의 가치

학생들의 양화진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 것을 나눈다. 학생들이 발견한 가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양화진은 촛불이다.’ 왜냐하면 세월호 추모회의 촛불을 보면, 작은 촛불하나가 모여서 큰 빛을 뿜어 내듯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선교사님들의 희생 하나하나가 모여서 지금의 한국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0학년 신현정) 
  • ‘양화진은 나자신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처럼 지켜야하고 사랑해야 하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10학년 이다원)
  • ‘양화진은 성경이다.’ 왜냐하면 성경 속의 인물들의 삶이 선교사분들의 삶과 비슷한 점이 많고, 성경 속 사건들도 이때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서다. 또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이 이분들로 하여금 실체화된 것 같기 때문이다. (10학년 김나연)
  • ‘양화진은 사랑의 실제·복음의 실제이다.’ 왜냐하면 많은 선교사님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셨다. 복음은 예수님의 삶이다. 그 삶을 보이기 위해 낯선 곳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잃는 슬픔도 가슴에 묻어두고 오히려 조선을 자신들의 가족처럼 사랑했던 뜨거운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사랑에 감사하다. (10학년 이영채)
  • ‘양화진은 불꽃이다.’ 왜냐하면 외국의 선교사들이 많이와서 기독교의 불꽃을 대한민국에 남겼기 때문이다. (7학년 송경아)
  • ‘양화진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조선을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복음의 선교사들을 보내신 좋으신 마음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7학년 형진혁)
  • ‘양화진은 꿈상자이다.’ 왜냐하면 양화진에는 선교사들이 이룬꿈과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들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곳이기 때문이다. (7학년 정은혜)
  • ‘양화진은 역사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7학년 장예위)
  • ‘양화진은 시험지이다.’ 왜냐하면 선교사님들을 점점 알아가고(하신일 등등…) 그 답을 찾아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다.(묵상,기도로) (7학년 곽하경)

그 외에도 학생들이 발견한 주옥같은 가치들이 보고서마다 가득했다. 학생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소명인의 삶인지를 나름대로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교사로서 하늘의 가치를 날마다 쫓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며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며 양화진홀 출구에 만난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한 걸음을 내딛는다.

사회과 역사 정승민 선생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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